충청권 내 산후조리 인프라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인구감소지역 산모들이 '산후조리 난민'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전과 세종 등 대도시에는 민간 시설이 밀집한 반면, 충남과 충북의 상당수 기초지자체에는 단 한 곳의 조리원도 없다. 최근 음성군이 유해시설 정비와 연계한 공공산후조리원 건립에 나서며 혁신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어 주목된다.
보건복지부와 충청권 지자체 등에 따르면, 2026년 2월 현재 충청권 내 운영 중인 산후조리원은 총 36곳이다. 문제는 이 시설들이 대전(9곳), 세종(6곳)과 천안·청주 등 주요 도시로만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충남은 전체 13곳 중 10곳이 천안·아산에, 충북은 8곳 중 6곳이 청주에 집중되어 있어 도심 외곽 지역 산모들은 사실상 인프라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
음성군의 현실은 더욱 엄혹하다. 2024년 기준 음성군의 합계출산율은 0.79명으로 전국 평균(0.72명)보다는 높지만 충북 평균(0.90명)에는 한참 못 미친다. 특히 관내에 분산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어 인근 도시로 1시간 이상 원거리 진료를 다녀야 하는 대표적인 '분만취약지역'이다.
현재 금왕읍 소재의 산부인과 단 1곳만이 임산부 진료를 담당하고 있으며, 산후조리원은 아예 전무하다. 이로 인해 지역 산모들은 원거리 원정 출산과 산후조리를 강요받으며 신체적·경제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공공산후조리원 조감도
금왕읍 무극지구 농촌공간정비사업 종합계획도이러한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민선 8기 조병옥 군수의 핵심 공약인 '공공산후조리원 건립'이 가속화되고 있다. 조 군수는 지난 2025년 4월 구체적인 건립 계획을 발표하며 "유해시설을 조속히 정비해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군민 숙원인 공공산후조리원을 건립해 '2030 음성시 승격'의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군은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공간정비사업 공모를 통해 국비 120억 원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 통해 금왕읍 무극지구 내 화학공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2027년까지 가칭 '아이맘케어센터'를 조성한다. 총 170억 원이 투입되는 이 시설은 지상 3층 규모로, 산후관리실·영유아실·모자동실뿐만 아니라 임신부터 육아까지 돕는 '원스톱 통합 서비스 거점'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음성군의 행정은 유해 시설을 복지 공간으로 바꾸는 '공간 재창출'에 방점을 찍고 있다. 금왕 무극지구와 더불어 대소면 오산지구 역시 장기간 방치된 폐공장을 철거하고 주민 복지 공간을 조성한다. 오산지구는 2026년 상반기 착공해 2027년 하반기 준공될 예정이다.
흉물로 방치된 산업 유산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산후조리원과 주민 복합 공간을 세우는 이 모델은 농촌 공간 재생과 필수 의료 인프라 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우수사례'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를 전국 지자체가 참고할 만한 '음성형 공간 업사이클링' 모델로 평가하고 있다.
도내 최초 제천시 공공산후조리원
제천시가 지난해 7월 30일부터 운영하는 ‘제천시 공공산후조리원’의 내부.
음성군에 앞서 공공 인프라를 확충한 도내 지자체들의 성공 사례는 사업의 당위성을 뒷받침한다. 특히 지난 7월 문을 연 제천시 공공산후조리원은 개원 초기부터 입소문을 타며 현재 90~100%의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제천시 공공산후조리원의 가장 큰 강점은 '압도적인 가성비'와 '고품질 시설'이다. 2주 이용료가 일반실 기준 190만 원이지만, 제천시민은 50% 감면 혜택을 받아 95만 원에 이용할 수 있다. 이는 민간 조리원 대비 3~4배 저렴한 수준이다. 또한 산모 사우나실, 피부관리실 등 프리미엄 시설과 더불어 대학교수진의 특강, 전신 마사지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추가 비용 없이 제공해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충주시 역시 분만 산부인과와 산후조리 기능을 통합한 '모자보건센터' 건립을 본격화하고 있으며, 단양군은 보건의료원 내 산부인과 운영을 통해 인구 절벽 위기 극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민간 산후조리원 이용료가 2주 기준 300~500만 원대를 호가하는 상황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산후조리원은 지역 산모들에게 유일한 대안이다. 하지만 건립 이후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지자체가 전액 감당하기에는 재정적 부담이 크다.
현재 22대 국회에서는 국가가 공공산후조리원의 설치비와 운영비를 지원하도록 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논의 중이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음성군 사례처럼 지자체가 의지를 갖고 부지와 건립 재원을 마련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운영비 지원이 법제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음성군은 저출산 극복을 위해 출산과 육아의 부담을 지역사회와 지자체가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공공산후조리원 도입을 통해 관내 산모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질 높은 서비스를 누리게 함으로써 '아이 키우기 좋은 음성'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유해시설 정비를 통해 출산 인프라를 구축하는 음성군의 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저출산 극복을 위한 지역 맞춤형 해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방 산모들이 더 이상 '산후조리 난민'으로 떠돌지 않도록 정책적 지원과 관심이 집중되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