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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청주 지킴이 호랑이 ‘이호’, 존엄한 마침표를 찍고 별이 되다
  • 권윤희 기자
  • 등록 2026-01-26 23: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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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가 남긴 존엄의 유산, 사자 ‘바람이’가 잇는 생명의 숨결
지난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충북도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시베리아호랑이 '이호'가 긴 여정을 마치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지난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충북도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시베리아호랑이 '이호'가 긴 여정을 마치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이호의 작별은 우리에게 깊은 슬픔을 남겼지만, 그가 머물던 청주동물원이 지향해온 '생태 동물원'의 가치는 구조된 사자 '바람이'의 건강한 포효로 이어지고 있다.


20년 동행의 마침표: 시베리아호랑이 '이호'의 마지막 길
청주동물원의 살아있는 역사였던 시베리아호랑이 '이호'가 지난 1월 24일, 19세의 나이로 폐사했다. 2006년 청주동물원에서 태어나 생의 전 과정을 시민들과 함께한 이호는 사람 나이로 치면 90세에 가까운 고령이었다.

이호는 폐사 일주일 전부터 식욕이 저하되는 등 노환의 징후를 보였으며, 관계자들의 보살핌 속에 마지막 숨을 거뒀다. 동물원은 지난 26일 오전 추도식을 열어 이호의 넋을 기렸다.

이호의 사체는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한 뒤, 국가 연구기관으로 이관된다. 이는 멸종위기종의 유전정보 확보와 질병 연구를 위한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되어, 죽어서도 종 보존이라는 큰 유산을 남기게 된다. 청주시는 오는 30일 이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추모 영상을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이호가 떠난 빈자리를 묵묵히 채우며 동물원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는 주인공은 사자 '바람이'다. 일명 '갈비 사자'로 불리며 전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바람이는 청주동물원으로 이송된 후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 앙상했던 갈비뼈는 이제 탄탄한 근육으로 덮였고, 거칠었던 털에는 윤기가 흐른다. 체계적인 영양 관리와 전문 수의사들의 집중 케어 덕분에 이제는 늠름한 수사자의 자태를 완연히 되찾았다.

최근 딸 '구름이'와의 합사에 성공하며, 사자 본연의 습성인 무리 생활을 안정적으로 즐기고 있다. 시멘트 바닥이 아닌 흙과 풀이 있는 자연 친화적 방사장에서 햇살을 만끽하는 바람이의 모습은 동물 복지의 중요성을 몸소 웅변하고 있다.

이호의 존엄한 노후와 바람이의 기적 같은 회복은 청주동물원이 추구하는 '생태 동물원'의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청주동물원은 단순히 동물을 가두어 보여주는 곳이 아니다. 상처 입은 동물을 치료하는 '야생동물 구조센터'이자, 멸종위기종을 연구하고 종을 잇는 '보존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최우선으로 수행한다.

부적절한 환경에서 고통받던 동물들에게 고향과 같은 안식처를 제공하는 청주동물원은 이제 국내 동물원들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가 되고 있다. 자연 지형을 활용한 방사장과 동물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은 동물이 인간의 구경거리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엄한 생명임을 일깨워준다.

이호의 마지막 길은 우리에게 한 생명에 대한 끝까지 책임지는 '예우'를 가르쳐주었고, 바람이의 포효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 가져오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청주동물원은 이제 시민들에게 화려한 볼거리를 주는 장소가 아니다. 생명의 무게를 배우고,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따뜻한 안식처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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